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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사람: 문보영, 글이라는 상자에 담긴 이야기들

스티비

2022.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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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 쓰는 문보영입니다.”

 

 

Interviewee 문보영

 

______    

 

“한 달에 한 번, 손으로 쓴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보낸사람:]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문보영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군요. 좋습니다. 시 쓰는 보영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뉴스레터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두 가지 유형의 뉴스레터를 보내고 계시죠. <일기 딜리버리>와 <시 딜리버리>는, 각각 어떤 뉴스레터인가요?

<일기 딜리버리>는 일기와 산문을 위주로 보내는 뉴스레터고요. 일주일에 두 세편 정도, 자유로운 글을 보내드리는 서비스예요. 그중 한 원고는 손 글씨로 써서 우편으로 발송해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시 딜리버리>는… 비밀리에 하고 있던 것인데요. 사실 제가 시를 너무 안 쓰는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본업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로컬스티치 서교 2호 지점에서 만난 문보영 시인

 

<일기 딜리버리>는 평소에 시를 즐겨 읽지 않으시는 분들도 구독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밀리에, 나를 위한 시 쓰는 습관을 조금씩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요. <시 딜리버리>는 우편발송도 하지 않아요. 제 연습장과 비슷한 거죠. 보실 분이 있으면 보셔도 좋다, 하지만 좋을지는… 나는… 장담 못한다, 허접할 수 있다. 그래서 <시 딜리버리>는 정말 친구처럼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구독자 수는 <일기 딜리버리>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구독자가 너무 많으면 제가 독자를 너무 의식할 것 같아서 구독 모집을 할 때도 제가 활용하는 SNS 채널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하진 않았고, 블로그를 통해서만 알렸어요.

 

<일기 딜리버리>와 <시 딜리버리>를 발행하신지는 어느 정도 되셨나요?

<일기 딜리버리>는 2년 정도 쉬지 않고 했던 것 같아요. 한 달의 연재가 끝나고 나면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이어서 다음 연재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무런 틈새 없이 몇 년을 하다 보니 제 삶이 조금 부족한 거예요. 글로 풀어낼 내 삶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동이 났던 거죠. 그래서 그때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고요. <시 딜리버리>는 2022년 1월부터 시작했어요. 다시 시를 열심히 써 보려고요.

 

<일기 딜리버리> 중 한 편의 원고는 직접 손으로 써서 우편 발송을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인스타그램 보니 당시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포스팅이 있더라고요.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는데요.

(웃음) 맞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포장 중인 모습

 

직접 쓴 글을 편지로 보낸다는 게 참 로맨틱한 것 같아요. 하지만 로맨스에는 낭만만이 있지는 않잖아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하나하나 우편으로 글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때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소소한 이벤트처럼 생각한 거거든요. 독자들께 직접 편지를 보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물론 힘들긴 했지만, 하고 나니 되려 저한테 더 좋더라고요.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정말 육체노동이잖아요. 편지를 쓰고, 봉투를 접고, 우표를 붙이고 하는 일들이요. 하루 종일 계속 정신노동만 하다가 몸 쓰는 행위를 한다는 게 저한테는 일종의 휴식이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줄곧 틀어놓고 이 편지를 받을 독자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마냥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어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우편을 보내는 노동 과정에서 오는 힘듦보다는, 할 말이 없을 때에도 어떻게든 뭔가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게 조금 힘들었고요. 또 일반 우편으로 보내다 보니, 반송이 되거나 잘 안 가는 경우도 있어요. 자잘한 일을 매일매일 처리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일손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우편을 보내며 다양한 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수신인을 구독자 이름으로 써서 보내드려요. 구독 신청하실 때 적어주신 이름이요. 그러다 보니 실명이 아닌 경우가 꽤 많은데요. 예를 들어 “도비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같은… (웃음) 그래서 어떤 분은 본인이 직접 받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받았는데, 수신인 이름이 이상하니까 이상한 우편이 왔다고 생각해서 버려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또 한 번은 군대에 계신 독자님이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부대에 제 뉴스레터를 받아보시는 분이 한 분 더 계셨던 거예요. 두 명에게 같은 편지가 온 거죠. 서로 문학에 관심 있는 걸 모르고 있다가 제 편지를 계기로 두 분이서 조금 친해졌다고 하더라고요.

 

해외에 계신 독자님들도 계시나요?

네, 종종 계세요. 해외로 보낼 때는 왠지 모르게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정말… 안 갈 것 같지 않아요? 이 작은 종이 더미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긴 여정을 거쳐서 결국 그분에게 도착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좋았죠. 그리고 그렇게 비싸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해외 발송이 쉽지 않아요.

 

개인이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의 값이 정해져 있잖아요. 대부분 한 달 1만 원으로요. 저는 이게 너무 낮게 측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맞습니다. 처음부터 약간 크게 나갔어야 하는데…

 

‘호당 가격제’라고 하잖아요. 통상 그림의 크기(호)가 클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경매 개념인데요. 처음에는 <일기 딜리버리>로 일기와 산문을 보내다가, <시 딜리버리>로 시를 보내기로 했을 때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는 장르 특성상, 글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데 구독료가 같으니까요.

그래서 9천 원으로 할까도 생각했어요. 우편 발송을 하지 않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9천 원이라는 숫자도 굉장히 애매하고, 정산하기도 힘들 것 같은 거죠. 길이에 따른 부피감에 대한 고민을 하긴 했는데요. 사실 제 시가 조금 긴 편에 속해서 엄청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를 보낼 때는 꼭 뭔가 덧붙여서 보내게 되더라고요. 시를 쓸 때의 생각이라던지, 관련된 짧은 일기라던지요.

 

 

뉴스레터로 발행되고 있는 <일기 딜리버리>와 <시 딜리버리>

 

<일기 딜리버리>에서 멋지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하나 더 있어요. 매달 쉬지 않고 보내는 것인데도, ‘기획’이 다 완성된 채로 구독자 모집을 하시더라고요. 쓰는 것과 보내는 일을 동시에 하면서 기획까지 생각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그렇게 주제로 독자님들 홀려놓고, 매번 배신을 하죠. (웃음) ‘왜 이런 주제를 잡아가지고…’ 사실 주제라는 것은 제가 보내는 글 중 한 두 꼭지 정도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라는 의미로 “특집”이라고 명명하는 것이고요. 나머지는 이제 주제를 배신하는… 그런 글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시작하게 되면 주제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약간 작위적인 것이 나올 수 있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제가 미리 써 놓은 원고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엮어보니 하나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들을 특집으로 묶어서 기획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시’라는 장르를 되게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두려워한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독특한 맛도 있고요. 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시를 보낼 때,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어요?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스스로가 어렵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요.

그래서 <일기 딜리버리>를 할 때는 시를 일부러 안 보냈었어요. 그런데 그 또한 나의 착각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지금은 조금 하게 되는데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읽을 수 있는 독자님들인데, 괜히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시 딜리버리>에서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보내요. 잘 안 읽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음에 구독 안 하시겠지, 그런 마음으로요.

 

보영 님은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시잖아요.

소설도 쓰고 산문도 쓰는데요. 그래도 저는 시인인 것 같아요. 사실은 ‘작가’라는 호칭이 제일 편하긴 해요. 소개하기도 편하고요. ‘시인’이라고 하면, 저는 조금 움츠러드는 편이거든요. 그 말에 끼인 편견 같은 것들도 있고요. 그래서 보통은 작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시를 쓰지 않으면 제 안에서는 무얼 해도 만족이 안 되는 것을 보면은… 시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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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것 같아요.”

 

보영 님에게 일기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기 자체가 보영 님에게 반갑고 고마운 글감인 것 같달까요. 보영 님에게 일기란 무엇인가요?

일기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것 같아요. 베스트 프렌드죠.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비슷해요. 평범한 삶을 살고, 학교에 다니거나 조직에 속하면서 생활을 하다 보면 ‘이상하다’라는 말을 조금씩은 듣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왜냐면 책이 나보다 이상하니까요.

 

그렇죠. 온갖 구질구질한 인간들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일기도 그런 것 같아요. 일기 쓸 때는 ‘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런 생각도 잘 안 들고요. 내가 느끼는 혹은 나에게 있는 이상함을 조금… 좋은 이상함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일기를 그대로 발췌해 <일기 딜리버리>로 보내는 경우도 있으신가요?

네, 그런 경우가 많기는 해요. 보통 일기는 공책에 쓰고 그것을 노트북으로 옮겨 적는 편이어서 완전히 거친 원고가 그대로 가지는 않지만, 보통 큰 수정을 거치지 않고 활용하기는 해요.

 

일기는 마음속에 있는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 뉴스레터로 타자에게 전할 때는 조금 다른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가끔 ‘내가 내면이 없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웃음) 써놓은 일기를 <일기 딜리버리>로 보낼 때는 큰 차이가 없어요. 제가 쓴 것이고, 그 상태로 있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사회화되는 것이 싫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기일지언정 이 글을 사람들에게 계속 보내고 피드백을 받고 하는 과정에서 다시 사회화가 되는 거예요. 제가 도망쳤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순간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 혹은 그런 글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잠깐 멈추는 게 좋아요. 그럴 때 쓰는 글은 저도 즐겁지가 않고, 사실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의 착각일 뿐이잖아요. 구독자들은 진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걸 해야 감응하실 텐데, 그 감각을 다시 찾고 믿게 될 수 있을 때까지는 조금 쉬고는 해요.

 

휘둘리지 않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인간의 반응이라는 게 너무 솔직하잖아요. 숨기려고 해도 즉각적으로 나오는 신호가 있기 마련이고요. 창작자는 그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고, 해야 하긴 하는데, 그게 또 ‘나’이긴 해야 하니까 그런 중심을 잘 찾아가는 게 글 쓰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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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엇이든 계속 쓰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소멸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일기 딜리버리> 이야기의 활주로 편에서

 

<일기 딜리버리>에서 <시 딜리버리>로 전환을 하신 거잖아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시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하신 거라고 하셨는데, 어때요? 그 습관이 성공적으로 잘 정착되었나요?

“오늘 시 썼니?”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서 시 쓰는 습관을 추적했던 적이 있어요. 2~3개월 정도 했는데요. 시를 썼다면 어떤 시를 썼었는지, 못 썼다면 왜 못 썼는지, 대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말 말 그대로 스스로에게 ‘오늘 시를 썼는지’에 대해 묻는 혼잣말 같은 글이었어요. 그리고 독자분들도 함께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며칠에 어떤 글을 썼고 며칠에는 못 썼는지 댓글을 남기는 게 일종의 시 쓰기 모임 같았죠.

 

그런데 저만 빼고… 다들 열심히 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못 쓴 것에 대한 일기를 쓰고 있더라고요. (웃음) 작년에는 시가 정말 안 써졌어요. 그래서 거의 못 썼던 것 같고요, 잠깐 시 쓰기를 쉬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마감이 있어야지 쓰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 딜리버리>를 시작했죠.

 

작가들에게는 마감이 정말 큰 원동력인가 봐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데 문예지에 글을 쓸 때랑, 뉴스레터에 글을 쓸 때랑 많이 다르기도 해요. 문예지의 경우에는 제가 모집한 독자에게 보내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작품 중 하나로 소개되는 것이다 보니, 읽히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런데 뉴스레터로 작품을 보낼 때면 어떤 사람이 읽는지, 어느 시간에 읽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니 “내 글을 정말로 읽고 있구나. 나에게 독자가 있구나”하는 감각이 더욱 선명해요.

 

뉴스레터를 보내면 바로 읽는 분도 계시잖아요. 그럴 때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크게 다가올 것 같아요.

제게 직접 돈을 지불하신 분들에게 시를 보내는 일이다 보니, 책임감도 있어요. 더 좋은 걸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문예지는 많은 작품 중 하나로 소개되는 것이다 보니, 가끔 얹혀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못 써도 너무 괴롭지 않고 잘 써도 엄청 기쁘지 않기도 해요. 그런데 <시 딜리버리>는 ‘내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잘 주면, 돈 값을 했다는 기분이 들죠.

 

등단하기 전에,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시를 모아놨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조금 쌓였을 때 한꺼번에 보내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뉴스레터도 안 좋은 피드백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구독자들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까, 글을 보낼 때 조금 덜 두렵기도 한가요?

<일기 딜리버리>는 홍보도 정말 적극적으로 하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 딜리버리>는 애초에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누누이 말하거든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초고일 수도 있고, 망한 시를 보낼 수도 있다고 정말 계속 말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보낼 거라는 사실을 굉장히 많이 강조했고요. 평소에 산문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께는 나중에 <일기 딜리버리>를 다시 시작하면 그걸 구독하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할 만큼요. 이 정도 말했으니, <시 딜리버리>는 진짜 진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구독하지 않았을까라는 착각을 계속하면서 보내고 있죠.

 

<시 딜리버리>는 엄청 좋은 걸 보내면 기분이 좋고, 안 좋은 걸 보내도 ‘내일 잘 쓰면 되지’라고 생각해요. <일기 딜리버리>를 할 때는 항상 매 순간 매 호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졌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일기 자체가 조금 어려워지더라고요. 뭔가 형식을 갖춰야 할 것만 같고. 이제는 최대한 부담 없이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말이죠.

 

유료 뉴스레터가 보편화되기 전부터 서비스를 시작하셨어요. 돈을 받고 써서 보내도 될까라고 고민하진 않았나요?

유료 뉴스레터의 시초인 이슬아 작가가 그냥, 해놨으니까. (웃음) 그걸 보고 생각했죠. ‘일기로 돈을 벌어…? 대박인데…?’

 

(웃음) 나 일기 왕인데!

‘나도 할래!’ 그렇게 돈을 받으며 글을 쓰다 보니까, 작가인 딸로서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거나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같은 게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아직도 불안하긴 하지만요.

 

뉴스레터를 시작하고 난 뒤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냥 내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제 글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글이 아니라도 그렇게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거예요. 수업이나 행사 같은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제가 주체가 되어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뉴스레터를 보내며 얻게 된 새로운 감각이에요.

 

뉴스레터에서 또 다른 재미 중 하나가 바로 ‘비밀 병기’인데요. 이 비밀 병기들과의 작당 모의에 대해서도 조금 듣고 싶어요.

동료 시인이나 작가와 함께 나눈 대화나 그들이 쓴 글을 발송하는 걸 ‘비밀 병기’라고 하는데요. 사실 그것도 일종의 탈출구 같은 느낌입니다. 못 쓰겠으니까, 한 꼭지는 네가 써줘라… (웃음) 그런데 독자들은 결국 그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사람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조금씩 알게 되면서 비밀 병기에도 조금 신중을 가했고요. 왜냐하면 저도 한 번 정도는 쉬고 싶은 마음에 비밀 병기라는 장치를 넣었지만, 무게 중심을 잘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정말 자신 있게, 진심을 다해 권할 수 있는 글을 소개하자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은 결국 발행인의 글을 읽고 싶어 한다’라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있으세요?

부정적이거나 직접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발행을 거듭할수록 뉴스레터를 만드는 발행인과 독자 간의 친밀도나 신뢰가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을 데려와서 새로운 관계가 또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점이 조심스럽더라고요. 굉장히 소중하게 쌓은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관계이다 보니까요.

 

출판 생태 구조 상, 작가는 매개자를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의 글을 선보이기가 쉽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뉴스레터 같은 형태의 일들이 돌파구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독자인 나에게 바로 글을 보내준다는 게 서로에게 특별한 경험일 듯한데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나서 달라진 일상의 변화 같은 게 있으신가요?

어쨌든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하다 보니까, 일상이 저절로 규칙적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예전엔 놀려면 얼마든지 계속 늘어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리고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딘가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고, 그런 게 일상의 지지대가 되어줄 때도 있고요.

 

하루에 글을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일어나서 쓰다가 밥 먹고, 작업실에 가서 또 쓰다가 또 밥 먹고…

 

답장은 많이 오는 편이에요?

네, 적지 않게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답장의 답장을 다 보내거든요.

 

정말요? 제가 독자라면 답장 쓸 맛 나겠어요. 제일 인상 깊었던 답장이 있으세요?

그런 분들이 있어요. 만나본 적 없는데 만난 것 같은 분들요. 보통 답장 주실 때 직접 쓴 글이나 일기의 부분을 써서 보내주시거든요. 그리고 제 글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을 짚어서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재밌어요. 왜 그 부분을 좋아했는지, 답장으로 보내주신 글을 읽어보면 알 것만 같거든요.

 

뉴스레터, 앞으로도 계속하실 건가요?

그럼요. <일기 딜리버리>도 재개하고 싶고, <시 딜리버리>도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쉴 땐 쉬더라도, 할 때는 하면서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뉴스레터가 일종의 트렌드이기도 하죠. 다년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쌓인 나름의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싶어 하시는 분, 혹은 이제 막 발행을 시작하려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나 팁이 있을까요?

기술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는 것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엔 포탈의 메일 서비스를 이용했었는데, 정말 불편했었거든요. 스티비의 서비스를 접하고 난 뒤 발송 자체가 매우 수월하고 간편해졌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정말 일기 쓰듯이요. 약간의 긴장을 유지할 정도로만 의식하면서, 의식하지 않는 거죠.

 

뉴스레터로 보낸 글도 언젠가 책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 출판을 염두하고 쓰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꼭 책이 아니어야만 읽을 수 있는 글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시의 경우에는 항상 목표량의 2배를 써서 절반을 버리는 식으로 작업하거든요.

 

<시 딜리버리>에서 ‘버린 시 특집’을 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망한 시를 투고하는데, 다른 자아를 창조하는 건 어떨까요? 문보영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요.

 

‘사실 그 작가가… 나였다…’. 너무 멋진데요.

그런데 걔가 더 잘 되면 어떡하죠. (웃음)

 

______    

 

인터뷰를 마치며

보영에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조금 불행해질 것 같을 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해요. “보영도 깨어 있을까?”

 

같은 시간에 깨어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좋아지니까요. 그래서 종종 당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지만, 평생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아요. 보영이 일기를 쓰듯 나는 시를 읽지만, 내가 그것이 될 수는 없을 것만 같아요. 그래서 나는 시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움츠러든답니다. 보영이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그러는 것처럼요.

 

왜인지 모르게 보영을 닮은 첫 시집에 서명을 해달라고 했지요. 보영은 작은 상자를 그려주며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어봤어요. 조금 놀라서 아무말이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당신도 나도 영영 모를 테지요. 그래서 좋습니다. 계속 알 수 없는 일들이 그렇게 가만히 존재하는 곳, 그곳이 시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자고 계속 쓰기만 하는 당신이 너무 좋습니다.

 

잘 잤으면 좋겠어요. 잠들기를 원하는 시간에 말이에요.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당신은 아마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을 것만 같거든요.

 

보영이 그려준 상자 속 작은 미래를 생각하며,

참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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